모성애를 소재로 만든 결이 다른 한국적 감성의 K-SF 영화
영화 '부산행' 으로 잘 알려진 연상호 감독은 지난해 2022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국무총리 표창과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감독상, 청룡영화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 등 각종 영화제 수상을 비롯해 '서울역', '반도', '염력' 등과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으로 유명세를 얻은 실력파 감독이다. 크로노이드 연구소 팀장인 '윤서현' 역에는 한국영화계 전설적인 명배우 고 강수연 '윤정이' 역에는 영화보다 주로 드라마를 통해 어린시절 부터 연기력을 탄탄하게 쌓은 배우 김현주 그리고 연구소장 '상훈' 역은 류경수가 출연하여 호흡을 맞췄다. 류경수는 국내 다양한 영화에서 조연으로 탄탄한 연기력을 갖췄으며 크로노이드사 회장의 뇌를 복제하여 젊은시절 회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을 소화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스토리(스포 포함)
먼 미래에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나 생존한 인류는 우주에서의 거주지 쉘터 여러곳을 만들고 이주한다. 그러던중 몇몇 쉘터들 사이에 끝없는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우주개발에도 성공한 인류는 인간의 뇌복제 기술 역시 획득하게 된다. '윤서현' (강수연)은 어린시절 폐종양에 걸려 병원신세를 오랜시간 지는데 엄마 '정이'(김현주)는 하나뿐인 딸아이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큰 돈을 벌 수 있는 용병생활을 지속한다.
수술이 있던날 정이는 서현이 수술을 마치고 나면 바로 옆에 있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출정하는데 그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목숨을 잃고 만다. 한편, 연합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이의 뇌를 자유롭게 복제할 수 있는 C단계로 계약하고 유족의 생활비, 교육비 등을 주겠다고 설득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윤서현은 성장하여 크로노이드사 뇌과학 연구소 연구팀장으로 일하며 전투 AI 로봇 연구를 진행한다. 윤서현 팀장은 매일 고뇌속에 빠진다. 비록 엄마가 아닌 뇌복제 로봇이지만 엄마의 외모와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AI 로봇의 전투 시뮬레이션에 느끼는 고통들을 지켜보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전설적인 스타 용병 정이는 출중한 전투 실력을 갖췄음에도 어느단계에서 항상 실패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버리기를 반복한다. 계속된 개발과 훈련에도 더이상 진전이 없자 크로노이드사 회장의 압력에 연구소장 상훈(류경수)는 초조함에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상훈은 연구에 진척이 없자 직접 전투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데 AI 로봇 정이의 팔을 자르고 총으로 다리를 맞춘 극한 상황에서 전투를 시작하게 만든다. 그런데 극한의 상황속에 몰린 정이는 미지의 뇌파를 발산하며 전투력이 극대화 되기도 하고 더 강한 힘이 나오게 된다. 미지의 뇌파는 오로지 딸에 대한 사랑과 애착 등이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윤서현은 얼마후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과 자신에게 3개월의 시간 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뇌복제와 기계의 몸을 빌려 더 살 수 있음을 알지만 자신을 위해 전쟁터에서 용병생활을 한 엄마에 대한 생각과 그리움에 고뇌에 빠진다. 정이가 느꼈을 아픔과 고통들에 대한 동질감 역시 느낀다. 윤서현과 연구소장 상훈은 AI 로봇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 확연히 다른 생각으로 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뇌복제를 통해 의체로 옮기는데는 인간의 존엄을 받는 값비싼 A타입, 거주등이 제한된 B타입 그리고 인간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C타입이 있다. 정이는 C타입으로 공인된 기업이나 구매기업에서 뇌복제가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계약된 것이다.
한편 어느날 본사에서 회장이 방문하는데 상훈 역시 AI 로봇이였다. 그러나 자신은 로봇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냈던 것이다. 사실 회장의 뇌를 복제하여 젊은시절의 회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회장은 상훈을 일시정지 시키고 서현에게 전쟁이 마무리되는 국면인 만큼 로봇 연구를 중단하고 다른 용도 즉 일상에 필요한 청소로봇 같은 것으로 전환 할 것을 지시한다.
AI 로봇 연구가 폐기 절차에 들어가며 서현은 괴로움에 빠진다. 그러던중 동료 연구원에 의해 회사에서는 이미 다른 용도로 정이를 이용하기 위해 개발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서현은 자신의 연구로 인해 엄마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망가진 것에 대해 분노하며 AI 로봇 정이를 탈출 시키려고 계획한다.
마지막 시뮬레이션날 마무리를 서현이 하겠다고 나서며 다른 연구원들을 돌려세운다. 서현은 시뮬레이션을 마친 정이를 잠시 되살려놓고 뇌복제 사실과 그동안의 연구들과 상황들을 비밀리에 털어놓는다. 그리고 정이의 미지의 뇌파 곧 딸에 대한 생각을 삭제하고 복제뇌를 다른 로봇으로 몰래 옮기고 탈출을 감행한다. 그런데 상훈은 갑자기 시뮬레이션상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총에 맞지 않은 가짜 시뮬레이션임을 알아차리고 격투를 벌이게 된다. 그와중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로봇 경찰들이 출동하여 전투를 벌인다. 전투끝에 상훈과 로봇 경찰들을 따돌리고 탈출에 성공하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 대한 깊은 고민
먼저 영화를 본후 시리즈물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먼저 아쉬웠다. 기존 할리우드식 SF와 달리 탄탄하게 구성된 스토리, 배우들의 감정 표현, 연기력 그리고 철학이 돋보인다. 아울러 인간 본능에 대한 고민 역시 숙제로 남는 영화다. 그동안 보아왔던 기존 SF영화의 CG로 구현된 화려한 액션씬들을 기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영화가 높은 순위를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평점이 낮은 이유라는 생각이다. 다양한 평과 호불호 역시 높은 관심의 발로라고 느껴진다.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정의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고민이 녹아든 영화 '정이'는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들의 공감으로 이어질 것이란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이정도 규모의 저예산으로 할리우드에 필적한 한국형 SF영화로서 손색없는 고퀄리티 CG 기술을 선보인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영화 특유의 감성들을 품은 영화를 클리셰적 신파라고 폄하할지언정 색다른 감성의 SF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영화속 정이가 갑작스런 힘을 발휘하는 미지의 뇌파가 딸에 대한 사랑, 모성애 였음을 알게된 딸 서현의 오열이 진한 감동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엔딩씬에서 서현이 '이제 본인만을 생각하며 사세요' 라고 억지로 밀쳐낸 어머니의 뇌를 이식한 AI 로봇 정이가 다시 돌아와 볼을 비비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주는 장면이다. 영화 개봉전 고인이 되신 한국 영화계의 전설 고 강수연 배우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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